시북군의 일드 이야기 1. HERO

 원래대로라면 한참전에 작성했어야 하나 도대체 생각이 정리도 안 되고 그냥 치일파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좀 결심을 하고서 글을 쓰게 됩니다. 사실 드라마라는 포맷에는 그닥 관심을 두진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꽂히는 작품들이 있는데 HERO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일단 계기는 작년 하반기에 개봉했던 극장판이 되겠습니다. 이전에 했던 TV시리즈는 관심도 없다가 그냥 개봉한다길래 가서 봤다가 마찬가지로 후지TV계열의 작품이었던 춤대 시리즈처럼 과거 작품과 링크가 이어지는 후속작이라는 면에서 안 보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키무라 타쿠야라는 걸출한 주연을 내세워서 인기면에서 크게 히트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사실 춤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내면은 겉으로 보이는것보다 꽤 복잡한 사정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춤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치밀한 묘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HERO를 보면서 깨달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극중에서 등장하는 고위 관료 자녀의 우발적 살해에 대한 무마, 의료사고를 둘러싼 병원과 환자간의 갈등, 결혼사기로 위자료를 갈취하는 여인네까지. 특히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을 통해 오히려 우리나라 이상으로 그 결과가 잔혹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중에서야 키무라가 분했던 쿠리우 검사가 어떻게 모조리 진상을 파헤쳐내긴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거든요. 우선 전자의 두 사건들이 이러한 케이스에 해당할 테고 특히 의료사고 에피소드에서는 쿠리우의 연수원 동기였던 변호사가 병원측 대변인으로 등장해서 공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법부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로펌간의 날카로운 대립도 볼만합니다. 또 결혼사기 에피소드에서는 법이라는 게 인간이 만든것인만큼 허점이 존재하고 아무리 부당한 것이어도 그것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보는 이의 씁쓸함을 자아내면서도 그 묘사의 수준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기업비리를 다루는 에피소드에서는 중앙 지부와의 대립도 등장합니다. 어짜피 쿠리우 일행들이 근무하는 곳은 일개 지방검찰청의 지부에 불과할 뿐. 매스컴과 사회여론을 의식하는 잘난 분들은 사태의 진상이야 어찌됐든 그냥 얼렁뚱땅 무마시키려고 할 뿐이거든요. 또 검찰과 경찰의 대립도 일품입니다. 어찌됐건 사법시험을 패스해서 일종의 커리어 조직과 같은 곳에 배속되어 있는 검사들과 일반 경찰시험을 쳐서 말단에 들어가서 늘 현장에서 죽어나는 형사들간의 미묘한 분위기도 훌륭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극중에서 검사라는 직업이 결코 편한 직업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정치사건같이 굵직한 일이 터지면 해당서류들을 잔뜩 압수해다가 밤새도록 분류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일이 결코 녹록하지만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는 일부에 해당할뿐 그쪽 동네도 우리네랑은 별반 차이가 없는지 사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쿠리우를 제외하고는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만연해있습니다. 더불어 사건에 얽힌 인물이 있는 자 없는 자에 따라서 검사들도 위압적이냐 알아서 굽신거리냐 하는 모습도 참으로 복잡미묘하게 다가옵니다. 당연히 검사가 발로 뛰어다니면서 물증을 찾는 일 역시 상상할 수 없지만 쿠리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기존의 검사의 이미지와는 다른 픽션에서만 가능한 영웅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다주는게 바로 HERO라는 작품이 지닌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편에서 그려지는 지방기업과 정치세력간의 알력은 HERO 최고의 에피소드이자 가장 풍자적인 속성이 짙다고 봅니다. 용의자로 등장했던 타키타는 일본의 사회발전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결코 흘려넘기기 힘들 정도로 통렬하게 사회의 폐부를 찌릅니다. 야마구치 현의 지방경제를 담당하는 토종기업인 카모이 산업은 중앙집중적인 성장속에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남게 하는 동력원이며 또 그런 카모이 산업은 그에 대한 보답을 취업자리 제공이라는 형태로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게 해줬지만 이런 카모이 산업의 강력한 백업으로 인해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은 진척을 보이지 못합니다. 이 와중에 카모이 산업의 사장의 스캔들이 극장판에서 용의자로 등장했던 하나오카 렌자부로의 정보통에 입수되고 이를 빌미삼아 카모이 산업의 손발을 묶는다라는 게 전반적인 흐름인데 바로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이란 다름 아닌 간척을 통한 SOC(사회간접자본) 구축이 그 정체인데 문제는 이것이 지방경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우선 배경이 된 혼슈 서부 지방의 야마구치 현은 바다와 인접해서 어업이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간척사업에는 이러한 지원책이 전혀 마련되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이러한 중앙정부주도의 사업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하나오카 렌자부로는 알맹이가 실한 카모이 산업을 취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는 흑심을 간파했기에 그가 보낸 상담역을 살해하고 기업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죄를 뒤집어 썼다는 그의 증언은 무게가 실려있습니다.

 드라마라는 포맷 특성상 재미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기에 쿠리우 검사의 파격적인 이미지에 너무 포커스가 맞춰진 측면도 없잖아 있지만 HERO라는 작품이 지닌 이런 일련의 속내는 결코 가볍게 볼 수만 없는 드라마로 만드는 데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식이 짧아 그냥 수박 겉 핥기 정도로 다뤘지만 일본사회의 실상, 일본검찰의 구조와 정치 시스템을 알고 있다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HERO라고 판단합니다.

p.s: 감상한 지가 워낙 된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정확하지 못한 곳도 있을겁니다. 그런 부분은 양해바랍니다.

by 시북군 | 2008/03/16 20:06 | My Entertainment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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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올페노크 at 2008/03/17 20:48
히어로 확실히 드라마가 재미도 있었고 언급하신 대로 풍자적 성격도 꽤 강했고 다 좋았는데 정작 볼떄는 다 재미있게 보다가 스페셜, 극장판 갈수록 기무타쿠 띄워주기가 눈꼴사나울 정도로 이상하게 부각되면서 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쓸데없는 비판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시북군 at 2008/03/17 22:34
올페노크/ 확실히 특별편하고 극장판은 좀 부득이한거 같습니다. 키무라군에게 전부 포커스가 맞춰지는게... 하여튼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많이 알 수록 그만큼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모토히로 카츠유키의 경찰물(춤대, SP), 히어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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