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4일
일본의 가수 TOP30 제15위
노래는 여기
시시한 어른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
hmv.co.jp독단과 편견의 JP Top Singer 제15위는 사노 모토하루. Epic소니 레이블 초기 본격적인 록가수로서 데뷔 후, 25년에 걸쳐서 독자적인 방법론과 시점으로 일본어 록을 개척한 남자.
쿨한 모습으로 샤우트를 이어온 사노 모토하루. 25주년을 눈앞에 두고 오랜 고향=Epic레코드를 떠나서 자주 레이블 데이지 뮤직에서의 활동을 선택. 그리운 멜로디처럼 되버리는 아티스트도 많은 가운데 지금까지도 새로운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1980년 데뷔 이래, '도시생활민을 위한 록/팝스'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으로 팬의 열광적 지지를 획득한 사노 모토하루. 그러나 그 활동은 때에 따라 급진적이어서 독자의 철학을 내포한다거나 대중성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을 향할때도 있었다. 그러나 20년 이상에 걸쳐 확실하게 악곡을 발표하고 투어를 돌며 그것을 전국의 많은 팬이 기다린다. 그리고 맥주CM에 출연해서 그 독특한 발음으로 '좋군-'하고 말하거나 한다. 그것이 용인되는 아티스트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때 모 음악평론가가 그를 평하며 말한 '사노 모토하루가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는것은 기적같은 것이다'라고 발언. 결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닌 '순수한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활약할 수 있는 굉장함과 귀중함'을 표현한 발언이다. '샹들리에의 거리에서 자지 않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Boogaloo'라는 선명하고 강렬한 한 구절로 시작하는 대표곡 '안젤리나(アンジェリーナ)'로 사노 모토하루가 데뷔한 것이 1980년3월21일. 포크~틴 팬 앨리 주변을 대표하는 시티팝·해피엔드 등의 초기의 일본어 록이 일단 수습되는 가운데, 마침 일본이 열렬한 아이돌·가요곡 붐과 펑크/뉴웨이브 등의 언더그라운드한 음악이라는 쌍둥이가 태동하게 되던 시대였다.
'록큰롤의 박력을 일본어로 표현한다'라는 사노의 목표. 그것은 강렬한 비트와 가사의 융합이기도 하며 그를 위해서는 강렬한 단어가 필요했다. 그것을 사노 모토하루는 훌륭하게 해냈다. 도시의 젊은이를 묘사한 그 독특한 언어감각은 'アンジェリーナ'시절부터 이미 꽃을 피웠다. 1st앨범 'Back To The Street'는 세일즈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어서 1981년에는 2nd앨범 'Heart Beat'를 발매한다. 동년6월 싱글 'Someday'를 발매. 후에 사노 모토하루의 대표곡으로서 불리는 명곡이 된다. 게다가 1982년에는 처음으롤 완전 셀프 프로듀스 앨범 'Someday'를 발매. 후에 '그 시절에는 솔직히 히트하고 싶었다'라고 회고하는 사노이지만 이 'Someday'는 오리콘 챠트에서 4위를 기록. 이 시점에서 일반적인 청취자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며 '사노 모토하루'의 이미지가 정착된다.
참고로 이 앨범전에는 스기 마사미치와 함께 오오타키 에이이치 주도의 'Niagara Triangle Vol.2(ナイアガラトライアングルVol2)'에 참가하며 거기서 오오타키의 레코딩에 대한 집념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사노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Someday'에서는 엔지니어인 요시노 킨지와 함께 사운드면에서의 실험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초기의 컨셉 '도시에서 호흡하는 (소년·소녀의) 순수함'을 완성한 사노는 앨범 히트후에 절호의 찬스임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돌연 홀로 미국행. 그 사이 국내에서는 편집 앨범 'No Damage'가 발매되어 결정적으로 '사노 모토하루 붐'이 일어난다.
1984년 귀국한 사노 모토하루는 미국 뉴욕에서 체재하며 만든 앨범 'Visitors'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오리콘에서 1위를 기록하나 당시 뉴욕에서 발흥하던 힙합을 의식한 편곡이나 보컬스타일을 수용한 이 작품은 찬반양론을 일으켰다. 그러나 히트한 앨범뒤에서 오히려 이런 급진적인 작품을 과감히 발매한 사노의 스타일은 결과적으로 청취자·관계자의 신뢰를 얻는 결과가 됐다. 그 후에도 사노 모토하루는 자기만의 밴드 "The Heartland"를 대동하며 재패니즈 록/팝스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앨범 'Cafe Bohemia(カフェ・ボヘミア)'. '나폴레옹 피쉬와 수영하는 날(ナポレオンフィッシュと泳ぐ日)'와 같은 걸작 앨범을 만들어갔다. 물론 투어도 적극적으로 돌며 그에 호응하는 형태로 새로운 팬을 획득했다.
또 사노 모토하루는 데뷔 당시부터 미디어나 새로운 문화라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고 평범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외에도 자신이 편집장을 맡은 문화잡지 'This'의 창간이나 시 낭송 발표, 게다가 시 낭송과 시집·사진집을 패키지한 카세트북 'Electric Garden'의 발표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팝적인 작품이 돋보이게 됐다. 1990년의 'Time Out!(タイム・アウト!)'에 이어 1992년에 발표한 'Sweet16(スウィート16)'으로 망설임 없는 사노 모토하루 록큰롤은 일본의 90년대 록의 걸작으로 평해지며 동시기에 발표됐던 싱글 '약속의 다리(約束の橋)'는 사노 모토하루로는 보기 드문 드라마 타이업곡으로도 큰 히트를 기록했다.
그 해 1993년에는 스타일을 바꿔 중후한 느낌의 소울풀한 앨범 'The Circle(サークル)'을 발표. 그 후 세간의 당혹감을 예측했다는듯이 철학적인 가사와 구성진 트랙 사이에 희망을 노래하는 악곡이 혼재하는 독특한 앨범이지만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걸작. 이 앨범에는 오르간에 블루 아이드 소울을 대표하는 베테랑 오르간 플레이어인 Georgie Fame이 참가했다. 오래도록 함께한 밴드 "The Heartland"를 해산시킨 사노는 순수한 솔로작이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는 초 팝적인 앨범 'Fruits(フルーツ)'를 발매. 97년에는 새로운 밴드 "Hobo King Band"를 이끌고 John Simon의 프로듀스로 'The Barn'을 발표. 팝적인 The Band의 정취를 지닌 이 앨범은 Garth Hudson이나 John Sebastian도 참가했다.
후루야 켄지(Dragon Ash)와의 협연을 포함한 'Stones and Eggs'를 겪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동안은 데뷔20주년 편집반 발매가 이어졌다. 그중에도 90년대 후반의 작품을 중심으로 BONNIE PINK와의 신 녹음 협연작 등을 수록한 'GRASS(グラス)'는 새로운 사노 모토하루를 알기에는 딱인 작품. 한 동안 오리지널 발매가 잠잠해진 상황이 이어지고 Spoken word앨범의 발매나 과거작의 편집반의 발매를 거쳐 2004년7월에 앨범 'The Sun'을 발표. 이 앨범은 전술대로 종래에 소속했던 에픽 레코드가 아닌 스스로 설립한 레이블 "Dasy Music"에서 발매했다. 최신작 'The Sun'은 Jam Band의 그루브와 심플함이 발산하는 언어로 사노의 신기축을 느낄 수 있는 앨범. 심플한 악곡군이긴 하나 강렬한 메시지로 넘쳐나며 마치 사노 모토하루와 대치하는듯한 생생한 감촉으로 가득하다.
일본의 씬에서 틀림없이 중요한 존재인 아티스트이면서 결코 안주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는 사노 모토하루. 그 스타일은 가령 Neil Young을 떠올리게한다. 지금은 그다지 'Lion(사노 모토하루의 별명)'이라고 평해지는 일은 없어졌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록큰롤의 평원에서 포효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시시한 어른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
hmv.co.jp독단과 편견의 JP Top Singer 제15위는 사노 모토하루. Epic소니 레이블 초기 본격적인 록가수로서 데뷔 후, 25년에 걸쳐서 독자적인 방법론과 시점으로 일본어 록을 개척한 남자.
쿨한 모습으로 샤우트를 이어온 사노 모토하루. 25주년을 눈앞에 두고 오랜 고향=Epic레코드를 떠나서 자주 레이블 데이지 뮤직에서의 활동을 선택. 그리운 멜로디처럼 되버리는 아티스트도 많은 가운데 지금까지도 새로운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1980년 데뷔 이래, '도시생활민을 위한 록/팝스'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으로 팬의 열광적 지지를 획득한 사노 모토하루. 그러나 그 활동은 때에 따라 급진적이어서 독자의 철학을 내포한다거나 대중성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을 향할때도 있었다. 그러나 20년 이상에 걸쳐 확실하게 악곡을 발표하고 투어를 돌며 그것을 전국의 많은 팬이 기다린다. 그리고 맥주CM에 출연해서 그 독특한 발음으로 '좋군-'하고 말하거나 한다. 그것이 용인되는 아티스트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때 모 음악평론가가 그를 평하며 말한 '사노 모토하루가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는것은 기적같은 것이다'라고 발언. 결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닌 '순수한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활약할 수 있는 굉장함과 귀중함'을 표현한 발언이다. '샹들리에의 거리에서 자지 않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Boogaloo'라는 선명하고 강렬한 한 구절로 시작하는 대표곡 '안젤리나(アンジェリーナ)'로 사노 모토하루가 데뷔한 것이 1980년3월21일. 포크~틴 팬 앨리 주변을 대표하는 시티팝·해피엔드 등의 초기의 일본어 록이 일단 수습되는 가운데, 마침 일본이 열렬한 아이돌·가요곡 붐과 펑크/뉴웨이브 등의 언더그라운드한 음악이라는 쌍둥이가 태동하게 되던 시대였다.
'록큰롤의 박력을 일본어로 표현한다'라는 사노의 목표. 그것은 강렬한 비트와 가사의 융합이기도 하며 그를 위해서는 강렬한 단어가 필요했다. 그것을 사노 모토하루는 훌륭하게 해냈다. 도시의 젊은이를 묘사한 그 독특한 언어감각은 'アンジェリーナ'시절부터 이미 꽃을 피웠다. 1st앨범 'Back To The Street'는 세일즈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어서 1981년에는 2nd앨범 'Heart Beat'를 발매한다. 동년6월 싱글 'Someday'를 발매. 후에 사노 모토하루의 대표곡으로서 불리는 명곡이 된다. 게다가 1982년에는 처음으롤 완전 셀프 프로듀스 앨범 'Someday'를 발매. 후에 '그 시절에는 솔직히 히트하고 싶었다'라고 회고하는 사노이지만 이 'Someday'는 오리콘 챠트에서 4위를 기록. 이 시점에서 일반적인 청취자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며 '사노 모토하루'의 이미지가 정착된다.
참고로 이 앨범전에는 스기 마사미치와 함께 오오타키 에이이치 주도의 'Niagara Triangle Vol.2(ナイアガラトライアングルVol2)'에 참가하며 거기서 오오타키의 레코딩에 대한 집념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사노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Someday'에서는 엔지니어인 요시노 킨지와 함께 사운드면에서의 실험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초기의 컨셉 '도시에서 호흡하는 (소년·소녀의) 순수함'을 완성한 사노는 앨범 히트후에 절호의 찬스임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돌연 홀로 미국행. 그 사이 국내에서는 편집 앨범 'No Damage'가 발매되어 결정적으로 '사노 모토하루 붐'이 일어난다.
1984년 귀국한 사노 모토하루는 미국 뉴욕에서 체재하며 만든 앨범 'Visitors'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오리콘에서 1위를 기록하나 당시 뉴욕에서 발흥하던 힙합을 의식한 편곡이나 보컬스타일을 수용한 이 작품은 찬반양론을 일으켰다. 그러나 히트한 앨범뒤에서 오히려 이런 급진적인 작품을 과감히 발매한 사노의 스타일은 결과적으로 청취자·관계자의 신뢰를 얻는 결과가 됐다. 그 후에도 사노 모토하루는 자기만의 밴드 "The Heartland"를 대동하며 재패니즈 록/팝스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앨범 'Cafe Bohemia(カフェ・ボヘミア)'. '나폴레옹 피쉬와 수영하는 날(ナポレオンフィッシュと泳ぐ日)'와 같은 걸작 앨범을 만들어갔다. 물론 투어도 적극적으로 돌며 그에 호응하는 형태로 새로운 팬을 획득했다.
또 사노 모토하루는 데뷔 당시부터 미디어나 새로운 문화라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고 평범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외에도 자신이 편집장을 맡은 문화잡지 'This'의 창간이나 시 낭송 발표, 게다가 시 낭송과 시집·사진집을 패키지한 카세트북 'Electric Garden'의 발표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팝적인 작품이 돋보이게 됐다. 1990년의 'Time Out!(タイム・アウト!)'에 이어 1992년에 발표한 'Sweet16(スウィート16)'으로 망설임 없는 사노 모토하루 록큰롤은 일본의 90년대 록의 걸작으로 평해지며 동시기에 발표됐던 싱글 '약속의 다리(約束の橋)'는 사노 모토하루로는 보기 드문 드라마 타이업곡으로도 큰 히트를 기록했다.
그 해 1993년에는 스타일을 바꿔 중후한 느낌의 소울풀한 앨범 'The Circle(サークル)'을 발표. 그 후 세간의 당혹감을 예측했다는듯이 철학적인 가사와 구성진 트랙 사이에 희망을 노래하는 악곡이 혼재하는 독특한 앨범이지만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걸작. 이 앨범에는 오르간에 블루 아이드 소울을 대표하는 베테랑 오르간 플레이어인 Georgie Fame이 참가했다. 오래도록 함께한 밴드 "The Heartland"를 해산시킨 사노는 순수한 솔로작이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는 초 팝적인 앨범 'Fruits(フルーツ)'를 발매. 97년에는 새로운 밴드 "Hobo King Band"를 이끌고 John Simon의 프로듀스로 'The Barn'을 발표. 팝적인 The Band의 정취를 지닌 이 앨범은 Garth Hudson이나 John Sebastian도 참가했다.
후루야 켄지(Dragon Ash)와의 협연을 포함한 'Stones and Eggs'를 겪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동안은 데뷔20주년 편집반 발매가 이어졌다. 그중에도 90년대 후반의 작품을 중심으로 BONNIE PINK와의 신 녹음 협연작 등을 수록한 'GRASS(グラス)'는 새로운 사노 모토하루를 알기에는 딱인 작품. 한 동안 오리지널 발매가 잠잠해진 상황이 이어지고 Spoken word앨범의 발매나 과거작의 편집반의 발매를 거쳐 2004년7월에 앨범 'The Sun'을 발표. 이 앨범은 전술대로 종래에 소속했던 에픽 레코드가 아닌 스스로 설립한 레이블 "Dasy Music"에서 발매했다. 최신작 'The Sun'은 Jam Band의 그루브와 심플함이 발산하는 언어로 사노의 신기축을 느낄 수 있는 앨범. 심플한 악곡군이긴 하나 강렬한 메시지로 넘쳐나며 마치 사노 모토하루와 대치하는듯한 생생한 감촉으로 가득하다.
일본의 씬에서 틀림없이 중요한 존재인 아티스트이면서 결코 안주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는 사노 모토하루. 그 스타일은 가령 Neil Young을 떠올리게한다. 지금은 그다지 'Lion(사노 모토하루의 별명)'이라고 평해지는 일은 없어졌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록큰롤의 평원에서 포효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노래는 Young Bloods. 원문은 여기
# by | 2009/03/14 19:42 | Musik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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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 CDgraphy
핫피엔도はっぴいえんど 패밀리를 제외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J-Pop 아티스트는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입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듣보잡' 취급을 당합니다. 이글루에서도 관련 포스팅은 10개도 못 넘어갑니다. 대형포탈에 올라온 게시물들도 모두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사용된 노래 'Someday'나 긴키 키즈의 방송에 묻어가는 내용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J-Pop이 덩치만 큰 음악산업이 아니라 독자적인 문화영역임......more
벌써 15위까지 번역하셨다는 사실에서 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