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것은 서브컬쳐라고 생각한다 제가 일을 시작한 70년대에는 싱어송라이터라는 형태로 활동하는 사람은 팝뮤직의 세계에는 거의 없었지요. 포크쪽 선배로는 있었지만. '슈거베이브'를 시작했을 즈음에는 '해피엔드'의 오오타키 에이이치씨가 잘 돌봐주셨습니다. 당시의 음악계라는것은 예능 프로덕션이 있고 거기에 소속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느낌이었지만 그런 형태가 아닌 모든것이 아마추어인 집단의 사무소에서 시작한 경위가 있습니다. 이른바 외국음악으로 키워진 세대였기때문에 자신들이 들어온 음악을 베이스로 오리지널을 만든다는 형태. 그렇기에 싱어송라이터라는 존재자체가 서브컬쳐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내가 하는 것은 서브컬쳐다' 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지, 저희들의 '서브컬쳐적 감정'을 이어가려고 느끼는 사람은 현재의 아티스트중에는 극히 소수네요.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30년간, 이걸 몇번이나 그만두려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초기시절, 좋은 오리지널이 있으면서도 싱글을 팔기위해서는 자신의 곡을 부르지 못하는 동료를 보면서 '결국 저런거야?' 라고. 음악이 상품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됐었죠, 젋었으니까(웃음). 저 자신의 경우로는 레코드 회사를 바꿨을 때에 '팔리는 앨범을 만들어라'라고 지시받아서, 그전까지는 셀프 프로듀스였지만 외부의 프로듀서를 영입해서 몇번이나 가사나 곡을 다시 써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작품이 저로부터 멀어지는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제 그만할까' 하고 생각한적도 있습니다. 물론 음악이 싫어진것은 아니고 말이죠. 하지만 당시의 경험은 훗날 다른 가수에게 악곡제공으로 이어졌고 다시 쓰여진 제 곡은 지금도 계속해서 불리는 스탠다드한 곡이 됐습니다. 80년대에는 아이돌을 포함해서 제법 곡을 썼습니다. 가사만, 곡만, 쓴 것도 포함하면 100곡 이상은 됩니다. 이전에는 발주할 때에, 가령 참고가 될 레코드라던가 가사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전달해주는 프로듀서가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맡겨주세요'형이 많아서요. 그게 제일 곤란합니다. 어쨌든 의뢰받은 작업은 될 수 있는대로 수용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그만둘까~'하는 습관이…(웃음).
막이 올랐는데 막이 있다? 어쿠스틱 콘서트를 시작한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87년 당시, 클래식 관계자만 무대에 오르던 산토리홀에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나한테는 무리일까?'라고 생각해서 거절하려고 생각했지만 작업이란 아마도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거야'라는 전제가 있어서 부탁하는거니까 그 시점에서 50%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겁니다.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어떤지의 남은 50%는 자신의 힘에 달린거니까요. 그런거라면 해 볼만하다고 수락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팝스 노선의 밴드로 해왔으니까 현악 콰르텟을 백업으로 최소한의 음향 시스템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회수를 거듭하면서, 특히 노래에 관해서는 얻는것이 많아서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콘서트는 지금도 어렵습니다. 30년이나 했으면서 말이죠. 20대에서 30대 초반에는 스테이지에 나가서 퇴장할때까지 긴장의 연속으로 콘서트가 끝나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관객과 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내려져있어서 제 목소리가 관객에게 닿지 않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40살을 넘긴 어느 날 스테이지에서 갑자기 막이 없어졌어요. 그건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지만 겨우 노래를 부를 수 있게됐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제 앨범에도 신디사이저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고 밴드에 의한 녹음을 소중히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목소리에 밀고 당김이 있었지만 목소리속의 정보량은 적었습니다. 노인과 젊은이는 한 마디 단어의 무게가 틀린것처럼요. 나이를 먹으니까 목소리속의 정보량이 늘어나는거에요. 그렇게되니까 신디사이저나 컴퓨터 음악속에서는 어째선지 노래만 붕 떠버리는겁니다. 생악기라는 것은 역시 정보량이 많으니까 그 속에서 노래하는 것이 안정되서 좋아요.
영화 '도쿄맑음'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 현재는 그다지 보지 않고 있지만 이전에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사운드트랙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음악작업이 없을까하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젊을때는 그런 작업은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다면 사운드트랙을 만들자고 생각한것이 '카이에(カイエ)'입니다. 파리에서 녹음했기때문에 그렇다면 함께 영상도 찍자고 해서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감독은 현재도 CM쪽 일을 하고계시는 세키야 소스케씨입니다. 소원이 이뤄지듯 영화전체의 음악 프로듀스를 맡게된것이 타케나카 나오토 감독의 '도쿄맑음'입니다. 제작사정상, 크랭크업이 시작되고 나서 음악을 생각하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본만을 읽고 모든 음악을 썼습니다. 타케나카씨에게 데모테이프를 들려주고서 레코딩을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던것은 먼저 음악이 완성되서 실제 현장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촬영할 수 있어서 영화의 길이에 맞춰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것입니다. 상까지 받아버리고(웃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더욱 음악을 라디오 정규방송을 가지고 있어서 신보는 듣지만 예전에 비하면 좋다고 생각되는것은 굉장히 적습니다. 60년대부터 듣다보면 현재것의 대부분은 재탕이고 어디서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는지 금방 알아챕니다. 그건 상관없지만 조금 더 자신속에서 소화한 작품이 되면 좋을텐데하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제작하는 측의 인재도 안 키운건지 못 키운건지…. 80년대말에 LP에서 CD로 넘어간 것도 음악의 내용이 변화하게 된 계기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구요. 직업작사가·작곡가와 가수가 뭉쳐서 만들어내는 것도 줄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남을만한 멜로디가 적어졌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옛날것을 듣게됩니다. 음악을 듣는 연령 대부분이 젊다고해서 그에 맞춰 음악을 만드는것은 할 수 없으니까 반대로 한창 일할때를 넘겨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는 분들을 위해서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것을 계속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분도 콘서트에는 와주시니까 나이에 상관없이 개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사람들에게 노래를 전달해주고 싶다 제가 현재까지 써온 곡중에서 커버된것은 아마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거에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곡과 제가 좋다는 곡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니까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색채도시(色彩都市)'를 포함한 20곡정도가 지금도 좋아하는 곡인데, '갑작스러운 선물(突然の贈りもの)'같은것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보편성을 지니고 지금도 낡지 않은것은 어떤 작품일지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이 취향에 맞는지는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것을 계속 쓰면 되는것이 틀림없지만 역시 우연의 산물처럼 탄생한것에 매력을 느껴서요. 오리지널 앨범도 잔뜩 냈고 단지 발매하는것이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런것에는 최근 의미를 발견할 수 없어요. 발견하더라도 발견 그 자체조차 전달되지 않는일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직접 스테이지에서 노래하는 편이 좋습니다. 솔로 콘서트만이 아닌 될 수 있으면 여러 장소에 얼굴을 내밀어 노래를 부르는것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니까 그런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온것을 밟아나가서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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